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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경(カレ―ドスコ―プ )

[중국] 만리장성의 비밀 : 만리장성이 길어진 비결…^-^

중국 국가문물국과 국가측량국이 합동으로 한 조사 결과 만리장성(萬里長城)의 길이가

종전보다 2,552㎞나 더 길어졌다는 발표가 있었어요。


이 기사를 보곤、

"원래 엄청 길었는데 모르고 있었구나…"

했었는데 얼마전 기고글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예전부터 알려진 만리장성의 길이는 6,300㎞。

그런데 4월 18일날 발표된 중국 정부 발표를 읽어보면、

만리장성의 서쪽끝은 가욕관(
嘉峪関)、동쪽 끝은 압록강변까지의 8,851.8㎞로 되어 있어요。


자고 일어나면 몰라보게 늘어나는게 중국 인구라지만

얘는 사람도 아니고 이천살도 넘은 유적인데 어떻게 길이가 늘어났을까요?


사연을 알고보면 참 일관된 중국인의 꾸준한 의지(…)를 느끼실 수 있을거에요







많은 사람들은 만리장성을 중국의 첫번째 통일국가인

진나라의 시황제때 건설이 시작됐다고 알고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래요。


지금부터 2,500여년전인 기원전 5세기경、중국의 고대 국가인 주나라때 북방 기마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아 올리기 시작한 성벽이 만리장성의 시초로、그 후에 국가 토목건설사업의 경제기여효과에 일찍 눈을 뜬

선각자 진의 시황제께서 중원을 일통한 후 30만의 군인과 수백만의 주민을 동원해 본격적으로

건설하기 시작한 대규모 경제 프로젝트
산물이 만리장성이에요。



물론 이 국가 주도의 토목공사는 국가 복지 제도나 보험 아저씨들이 등장하기 이전의 시기라

공사중 죽고 다친 사람들은 산재나 생명 보험 등의 보상혜택을 받지 못 해 많은 가정이 파탄됐고、

진나라는 만리장성 건설과 분서갱유라는 악재때문에 2대도 넘기지 못하고

국가가 붕괴돼버리는 폐해를 불러왔어요…^-^



그 후 중원에 일어난 나라들의 꾸준한 보수와 개수 공사를 통해 지금의 만리장성의 모습이 완성된 건

명나라 시기로 이때는 그냥 다듬어 사용했던 돌 대신에 부분적으로 벽돌을 사용해

장성의 전체 길이는 약 6,700㎞에 이르렀다고 해요。



이렇듯 중원에 생겨나 번성했던 나라들이 차례 차례 일어난 북방 기마 민족의 위협에 대항하는

방어용 성벽으로 공을 들여 만들어 유지했던 것이 만리장성으로

만주의 만족이 세운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방어용의 가치를 잃고 쇠락해가기 시작했다고 해요。




"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호걸이라고 할 수 없다"

는 故 모 주석의 말도 남아 있는 현대의 만리장성에는、

오른쪽은 평탄해 찾는 이가 많고、왼쪽은 경사가 40도나 되어 오르기 힘든 팔달령장성(八達嶺長城、팔달령)、

너무 험해 로프웨이에 의지해 올라가야 하는 모전욕장성(慕田峪長城)、

신발에 수건을 감고 올라가야할 정도로 험하기로 유명하지만 해발 986m인

망경루의 전망이 천하절경이라고 소문난 사마대장성(司馬台長城) 등이

관광지로 개방돼 전세계에서 많은 이들이 "호걸"이 되고자(…에?) 찾고 있어요。


(참고문헌 "북경사"、"북경풍물지")








지금 남아 있는 만리장성의 서쪽 끝은 감숙성(甘粛省)의 가욕관(嘉峪関)、

동쪽 끝은 하북성(河北省)의 산해관(山海関)으로 보아 전체 길이는 약 6,300㎞라는게 학계의 정설로

오랜 동안 만리장성 길이에 대한 다른 학설은 존재하지 않았대요。


얘를 지도로 보면、


만리장성의 모습은 위 그림처럼 중국 내륙에 쏘~옥 들어간 보기 좋은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그런데 4월 18일날 중국 정부가 발표한 만리장성의 서쪽 끝은 가욕관(嘉峪関)

동쪽 끝은 북한의 신의주시와 압록강을 건너 마주 보고 있는 쌍둥이 도시인

요녕성(遼寧省、랴오닝성) 단둥시(丹東市)의 북동쪽에 있는 호산(虎山)까지로 되어 있어요。


얘를 지도로 보면、


새로 만리장성으로 추가된 부분을 보면 뭔가 냄새가 풍기는 것 같지 않으세요?


중국 정부의 입장은 중국의 고대 사서인 "위략(魏略)'에、
 
"진시황이 장군 몽염(蒙恬)을 시켜 장성을 쌓아 요동에 닿았다"

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압록강변까지 장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래요。

하지만 근래까지 만리장성으로 볼만한 유적이 남아 있는 것도 없었고、

학계에서도 요녕성에 있는 성터 유적들을 장벽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대요。



동북아 역사왜곡에 앞장서고 있는 중국의 이상한 교수님 탄시샹(譚其驤)씨가

1982년에 책임편찬했던 "중국 역사 지도집"에도、


"산해관 동쪽의 요동변장은 장성(長城)이 아니라 호원(壕垣·도랑과 담)"

이라고 쓰여 있어서 중국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 같아요。


중국에서 만리장성은 중국의 영역(중원)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그래서 산해관은 관내(關內)와 관외(關外)를 나누는 기준이 되었고、

중국 한족에게 관외였던 만주는 중국 땅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왔어요。



그런데 2004년에 중국 정부가 단둥시 호산에 고구려 박작성으로 추정되던 유적을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웅장한 규모의 "호산장성"과 "호산장성 역사박물관"을 새로 건설하더니 이번에、


"어머나! 알고보니 만리장성의 진짜 동쪽 끝은 호산장성이었나 봐요~^0^"

라는 발표를 하게 된거래요…


고구려의 "박작성(泊灼城)"은、

'현재 중국 단둥시 동북쪽의 호산산성'에 비정(옛 지명과 현재 지명을 1:1로 연결해 추정)되는 곳으로

당태종의 고구려 침략때도 함락되지 않았던 곳이래요。

압록강 일대에서 고구려 양식으로 건설된 유적으로는 유일한 곳이었는데

중국 정부의 호산장성 복원 사업으로 파헤쳐지고 내쳐져 버렸어요。








중국에서 국경 문제를 연구하는 "변강학(邊疆學)"이

본격적으로 주목받으며 대두된 것은 개방 이후인 1990년대 부터래요。


변강학자들은 "고구려사"를 "찬란한(…) 중국 오천년 역사의 일부"로 정립해 버린 주체 세력으로、

중국 공산당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는 학자들이기도 하대요。

그래서 중국에서는 양심 있는 학자들도 "고구려사"는 중국 역사가 아니라는 주장이나

만리장성의 끝은 산해관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 하는 분위기래요。



이번에 "요동변장도 만리장성"이라는 중국 정부의 "만리장성 동단 연장론"은

요동과 만주는 예전부터 중국 영토였고、

거기에 더해 우리나라 조선 초기의 북진 정책으로 얻었던 지금의 북한 영토인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의 땅도

원래 명나라 땅이었다는 논리를 상호 보완하는 학설을 중국 정부가 공인한 셈이래요。



과거에 우리나라 정부가 H교수를 전폭적으로 밀어주던 식으로 중국 정부가 띄워주고 있는

스타 교수 탄시샹(譚其驤)씨는 예전부터 "몽골의 역사도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요、

역사적으로 고구려사도 중국사、한반도 이북지방도 중국 영토였다면 내년에는 "천리장성"에서 중국인 DNA가 검출된

머리카락이 발견됐으니 "천리장성도 우리꼬~"라는 이야기까지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참 냐스럽지만 만리장성의 길이가 8,851.8㎞에서 끝날 것 같지 않아요。

아직 중국에서 정식으로 인정된 학설은 아니지만 중국 정보 센터가 발행한 "중국 고고학"이라는 잡지를 보면、

"만리장성의 서단(西端、서쪽 끝)은 신강성(新疆省) 카슈갈 지방까지로 봐야 한다"

는 논문이 최신 고고학 조사의 결과라고 게재되었던 글을 본 적이 있거든요。

그렇게 되면 만리장성은 가욕관에서 시작된게 아니라 실크로드로 유명한

훨씬 서쪽 신강성(신장 우웨이얼 자치구)까지 늘어나 지금보다 최소한 500㎞는 더 늘어나게 되어요。


"신강 문물 고고연"의 이 논문을 읽어보면 중국 서쪽 끝의 이 황량한 사막에는

자갈로 덮인 성벽이 일직선으로 이어져 롭-놀의 북쪽까지 이어져 있는데、

"
정말 놀랍게도 생김새나 구조등이 만리장성과 거의 똑같기 때문에 이것도

만리장성의 일부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래요… 정말 깜찍한 주장 같지 않으세요…^-^


이렇게 되면 우리의 "만리장성군"은 500㎞ 정도가 더 늘어나게 되는데요…

"고고연"은 이 학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중국 고대 역사서인 사서(
史書)에、

"기원 전 2 세기、한의 무제가 60만의 민간인을 동원해

돈황(敦煌)으로부터 시오자와(塩沢、현재의 롭-놀)까지 장성을 건축했다"


고 기록하고 있는 것과 돈황 천불동의 벽화에도 이 지역 "서역장성"의 그림이 남아 있다는 점을 들고 있어요。


민족도 다르고 종교와 풍습도 한족과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이 지방에 번영했던 "누란 왕국"도

중국 역사학계는 한나라에 종속됐던 나라라고 목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는 분위기라

머지 않아 이 지역의 고대사까지도 중국 역사로 편입되어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만리장성이 늘어났다고 마냥 축하해줄 일은 아닌 것 같아요…^-^